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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문화살롱

기사승인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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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이 자유롭게 감성을 개발하고 자신들의 문화적 욕구를 표출 할 수 있도록 정책과 행정은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1920년대 파리의 어느 살롱이 자주 등장한다. 그곳에는 당대의 화가, 시인, 철학자들이 모여 사람들과 어울리며 관계를 형성하고 자신의 예술적 혹은 인문학적 취향을 나누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펍이나 카페 같지만 마실 것, 즐길 것들은 수단에 불과하고 그들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듣고 교류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곳, 그곳이 살롱이다.
 

 20세기 중반까지 한국사회에서 다방이 그 역할을 했다. 시인도, 화가도, 배우도 커피 한잔 값으로 문학과 철학, 시와 예술을 토론하고 때로 깊은 애정과 신뢰가 형성된다면 요즘 말로 창작 협업과 융복합의 결실을 맺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만들고 실험하고 때론 시대를 이끌기도 한 것이 살롱이자 다방이다. 이들은 이 공간을 통해 연결되고 진화하니 이 공간은 아지트를 넘어 문화의 산실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다.
 

 21세기 우리에게는 현대적인 버전으로 살롱이 재탄생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살롱문화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디지털 네트워크를 넘어 현실에서의 관계 맺기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살롱 혹은 다방이 일면 폐쇄적인 면이 있었다면 이들의 관계 맺기는 기성세대와 다르게 나이, 학연, 지연, 혈연과 얽히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중심으로 맺어 진다는 자유로움을 갖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낮선이들과 함께 모여 같은 취향의 책을 읽거나, 음악에 대해 토론하고 작가, 배우들과 만나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등 적극적인 의미의 문화향유자이자 생산자가 되기도 한다. 어찌보면 새로운 것 같지만 사실 80년대 초반까지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들이 다른 형식과 세련미를 갖고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 얼마 전 약 2주간 문막시장 빈 점포를 빌려 프로젝트 책방을 열어 보았다. 21세기형 책 살롱을 시도해 본 셈이다. 예술가 책방이라 이름 붙힌 이 공간은 예술가가 직접 꾸미고 참여 예술가들이 큐레이팅한 책들을 판매하거나 자유롭게 열람하는 공간이다.

 짧은 기간이라 책을 얼마나 팔 수 있을 지는 괘념치 않았기 때문에 사업적으로는 망할 수 밖에 없었던 책방이지만 이 책방은 인구 2만명의 문막에서 책방이 지역커뮤니와 어떤 관계 맺기를 할 수 있을지 실험하는 예술행위였다.
 

 예술가 책방은 엄선한 좋은 책을 소개하고, 장날에는 재즈 연주자들이 공연했으며, 문막에서 창작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책 이야기, 평론가의 연극이야기, 배우들이 읽어주는 단편소설로 채워졌다.

 오랫동안 비워져있던 빈 점포에 책방을 꾸미는 동안 시장 주변 상인들 사이에서는 반가움과 기대감의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개업 첫날 이웃한 편의점 사장님은 마수걸이로 책을 두 권이나 사가시면서 책방이 생긴다니 마음이 설렌다는 말씀으로 운영진을 감동케 하셨고 강원도 여행길에 들르신 중년의 부부는 배우들이 읽어 주는 책을 끝까지 들어주시고 책에 대한 토론까지 함께 하며 좋은 경험을 이야기 해 주셨다.
 

 2주간의 책방 프로젝트는 문을 닫았다.  아쉬움이 많지만 책방이 인구 2만의 작은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매개되고 관계 맺기가 가능한지, 책이 아니더라고 일상 가까이에 작은 문화공간이 있다면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어떤 유의미함을 가져다줄지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우리는 인식한다.
 

 # 원주시가 예비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특히 시민이 만들어 가는 창의문화도시를 모토로 했다니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일상의 가까운 곳에 21세기 형 문화살롱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길 바란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아파트 한 채 정도 임차해서 독서 살롱이 생겨도 좋겠고 구도심의 작은 상가 한 채를 임차해서 음악살롱이 생겨도 좋겠다. 전설처럼 들었던 원주의 옛 다방을 만들어 다회(茶會)를 열어 보는 것도 즐겁겠다. 폐업한 식당이 있다면 요리에 관심있는 분들이 다이닝 살롱을 만들어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면서 탈 혼밥족이 되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이런 살롱들은 대개 작은 규모여서 누구나 운영에 참여할 수 있고, 집 혹은 직장 주변에 있어서 오며 가며 들를 수 있는 곳이여야 한다.
 

 원주시에서 임차료를 지원 할 수 있다면 크고 작은 문화 커뮤니티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볼 수도 있겠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감성을 개발하고 자신들의 문화적 욕구를 편안하게 표출 할 수 있도록 정책과 행정은 마중물이 되어주기 바란다. 소시민들의 '자유로운 감성'은 참 민감한 것이라 누군가 옆에서 큰 소리만 내도 연기처럼 사라지지만 내버려 두면 도시를 살찌우고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동력이 되기도 한다.
 

 21세기 문화살롱은 내 집 거실에서도, 마당에서도 놀이터에서도 부활하고 있다. 시민 모두가 문화살롱의 기획자가 돼 보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원영오 극단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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