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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가슴으로

기사승인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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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가슴 뿌듯함을 느끼는 그런 스승의 날이 한 번만이라도 내 가슴에 메아리치는 그런 때가 다시 왔으면

 

  나의 사무실 책상 서랍에는 30년도 더 지난 싸리나무 화초리가 자리 잡고 있다. 교직에 처음 발을 들여놓고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 한 학생이 유독 많아 졸아 혼내기를 자주 하였는데, 어느 날 이 학생이 나에게 불쑥 회초리 하나를 내밀며, '자기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졸음을 떨칠 수 없겠으니 자기가 졸 때마다 이 회초리로 혼내달라'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매시간 그 회초리를 교탁에 올려놓고 수업을 하였는데, 한 번도 그 회초리를 사용한 기억은 없다. 신기하게도 회초리를 내밀던 그날부터 학생은 한 번도 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학생은 보기 좋게 우리가 부러워하는 서울의 모 대학에 진학하였고, 나는 수업시간이면 때때로 그 회초리를 보이며 너희들 선배가 이런 정신으로 공부하여 진학하였다는 이야기를 영웅담 늘어놓듯, 때로는 협박하듯 반복하면서 또 하나의 자랑이 된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회초리를 허공에 대고 휘두르기만 하여도, 저속하다싶은 단어 하나 내뱉기만 하여도 범죄자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세태이지만 말이다.
 

 그러다 지금의 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또 다른 추억을 가질 수 있었다. 출근하다보면 한 학생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쪼르르 달려와 손을 내미는데, 등굣길에 주웠을 밤알 몇 톨, 어제 저녁 제사상에 올랐었을 사탕 몇 알. 내 손에 쥐어주고는 다가설 때보다 더 빠르게 내게서 달아나곤 했다.

 교무실 책상 위에 들꽃 몇 송이가 종이컵에 담겨 피어있기도 하고, 수업 시간이 되어 교실에 들어서면 커피나 음료수 한 잔씩 교탁 위에 놓여 있을 때가 많았으며, 엄마의 성화에 억지로 가져왔을 열무 한 단, 한 주먹 쯤의 풋고추를 받아 쥐는 때도 있었다.
 

 셋방을 전전하다보니 이사를 자주 하였는데, 그때마다 우리 반 아이들 몇 명은 일손을 돕는다며 집으로 찾아왔고(사실 세간이며 집기류를 망가뜨리는 때가 더 많았다.) 아내는 그때마다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아이들을 반겼다.
 

 지금 생각하면 무지했다 싶을 정도로, 혼날 일이 아닌 사소한 잘못이고 실수를 저지른 학생이었는데, 심하게 꾸짖고 부모님과 통화를 하는 가운데 오히려 부모님께서 더 송구스러워하며 용서를 빌던 그때를 추억 삼아 웃으며 말하는 학부모님과의 만남을 지금도 십 수년째 이어가고 있다. 요즘같은 세태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몇 년 전 어느 대학에서 학생이 교수님께 드린 캔커피 하나 때문에 언론을 뜨겁게 달구더니, 얼마 전에는 어느 고등학교에서 장기 결석한 학생의 징계 문제로 학부모를 학교에 오시게 했는데, 대뜸 '학생이 이 지경이 되도록 학교에서는 무얼 하고 있었느냐'며 호통 치는 일이 있었단다. 하기야 커피 하나를 사더라도 돈이 들어야 하는 것이고, 착하고 귀하기만 한 내 자식이 졸지에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는데, 화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으며, 그런 학교를 어떻게 믿고 자녀를 맡길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가까운 미래에 지금의 성인들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직업이 사라지고, 슈퍼컴퓨터와 로봇이 그 모든 것을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이 커지며, 청소년들은 꿈꾸던 미래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요즘의 세태가 되었다. 그러기에 부모들은 더욱 안타깝고 청소년들은 무기력해지는 요즘에도 변하지 않는 명문대학 진학의 꿈으로 짓누르며 생활의 무게만 무거워지는 올해도 씁쓸하고 우울한 스승의 날이 지나고 있다.
 

 유치한 비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린이날 아이들 품에 가득 안겨주는 선물이나, 어버이날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드리는 카네이션, 성년의 날을 축하하며 건네는 꽃다발은 아니더라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가슴 뿌듯함을 느끼는 그런 스승의 날이 한 번만이라도 내 가슴에 메아리치는 그런 때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

정광호 원주문인협회 회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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