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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계환(59) 성남2리 이장

기사승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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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리 문화역사콘텐츠 개발 '꿈'

 

 숲은 인류 역사문화의 고향이다. 특히 마을 숲은 주민에게 역사와 함께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정신문화의 상징이다. 고계환(59) 신림면 성남2리 이장에게 천연기념물 제93호인 성황림도 그렇다.

 삶의 뿌리였고 지금도 그가 이곳에 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황림은 일제시기인 1930년대 조선보물고적명승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하지만 제대로 보호 손길을 받지 못하자 원주시가 보호를 위해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은 스스로 회복했다.

 다양한 야생화, 이끼와 버섯이 자랐고 층층나무, 들메나무 등 목본식물과 초본식물 100여 종이 넘게 확인되기도 했다. 이 모든 풀과 나무를 온전히 기록하고 눈에 담는 사람이 고 이장이다. 주 2회 꾸준히 성황림을 찾아 생태계를 확인하고 메모한다. 그리고 자연의 신비로움에 놀란다.
 

 목수였던 아버지가 59세에 낳은 늦둥이 인 고 이장은 부산으로 대학을 가면서 원주를 떠났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와 사별한 뒤 홀로 계신 어머니를 두고 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후 삶의 목표는 어머니와 같이 사는 것 하나였다. 대학 졸업 후 인천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6년 정도 어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평생 시골에서 산 어머니의 도시 생활은 쉽지 않았다. 당시 상원사 주지스님이 공양주보살을 부탁했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신림으로 왔다.
 

 "평생 시골에 사시던 분을 도시로 모시고 간 것은 내 욕심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고 이장은 "같이 살지는 못하더라도 자주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에 월 2회는 잊지 않고 신림에 왔다"고 말했다. 단순히 어머니만 챙기는 것은 아니었다. 연 2회는 동네 어르신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했다. 인천에 살다보니 수산시장이 가까워 회를 준비해 와서 50여명의 어르신과 함께 먹었다. 한 두 번이 아니라 20여 년 동안 매년 푸짐하게 차렸다. 그래서 마을 돌아가는 사정은 웬만한 주민보다 잘 알았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이곳에 살았던 토박이였기에 신림은 항상 생활의 중심에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격주로 신림을 찾는 것은 계속됐다. 그러다 3년 전 원주로 이사를 왔다. "집 짓는 것을 공부하다 고향에 내 손으로 직접 집을 짓고 살고 싶어졌다"는 고 이장은 2년에 걸쳐 아내와 공부하며 직접 집을 지었다. 고 이장이 이사 오자 동네 어르신들의 이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 계속됐다. 타지 생활을 하는 내내 자주 드나들었기에 동네 사람들에게도 고 이장은 마을 주민과 다르지 않았다.
 

 이장을 맡자마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스텝과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공부하고 참여자를 모집하는 과정 속에서 지역에 대한 사랑도 깊어졌다.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늘렸고 직접 제안서도 작성해 발표하며 교보생명 가족사랑 농촌체험마을에 선정되기도 했다. 숲 해설가이기도 한 고 이장은 체험객이 오면 성황림 숲 해설도 직접 한다.
 

 감탄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성남리를 단순히 성황림이 있는 마을로 기억하는 것이 아쉬운 고 이장. 그래서 그에겐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후삼국시대 궁예가 주둔했던 곳으로 고려 건국의 발원지인 석남사지와 성황림을 연계한 역사문화 스토리텔링이다.

 이미 성황림의 생태적 가치와 풀과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생활 속 눈높이로 풀어낸 책인 '나무가 민중이다', '나무가 청춘이다'를 낸 작가다 보니 성황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 지금은 '나무가 인생이다'라는 또 다른 책을 준비하고 있다. 어린 시절 백일장을 휩쓸었던 고 이장의 감칠맛 나는 블로그 글 덕분에 많은 사람이 성황림 생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장을 하며 가장 큰 보람은 원주시가 6억4천만 원을 투입, 석남사가 있던 성남리 절골 토지 8필지 5천278㎡를 매입해 보존하고, 발굴조사하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겪은 갈등으로 속앓이도 있었지만 역사문화 마을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꼭 지켜야할 자산이었다. 고 이장은 "성남리는 천혜의 자원을 가진 곳"이라면서 "역사와 문화 그리고 힐링을 할 수 있는 마을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며 오늘도 성황림으로 향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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