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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꽃을 피운다

기사승인 202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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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한 기다림으로 지켜봐 주면, 단지 때가 다를 뿐 아이들은 각자의 색깔과 각각의 모양으로 꽃을 피운다

  #장면 1.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아랫집 감자밭을 보면서 '분명히 하루이틀 차이로 씨감자를 심었는데 저 집 감자는 벌써 저렇게 꽃을 피웠는데 왜 우리 학교 텃밭의 감자는 꽃을 피울 기색이 없는지' 하며 투덜댄 적이 있다. 그렇게 며칠을 멀쩡하고 죄(?) 없는 텃밭의 감자싹을 안달이 날 정도로 들여다보며 지쳤을 때, 어느 새 꽃은 피었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될 무렵 꽤 많은 양의 감자를 수확할 수 있었다.

 #장면 2.
 어느 날 한 학부모가 물었다. "쌤, 도대체 참꽃에서 어떤 교육을 하셨나요? 늘 엄마아빠 뒤에서 웅크려 있던 수연(가명)이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중에도 춤을 추고 그럴까요?"
 

 뭔가 근사한 대답을 원하는 눈치다. 하지만 근사한 대답은 없다. "어떤 교육이요? 죄송하지만 저희는 특별히 한 게 없어요. 그저 같이 밥해 먹고, 같이 여행다니고, 같이 산책하고, 숙제 안 하면 그런가보다(가끔 혼도 냈지만) 하고, 말하면 들어주고, 하고 싶지 않을 땐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단지 기다리고 지켜봐주기만 했어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깨고 나오더라고요."

 스무 해 가까이 교사로 살면서 그 중에 10년을 여기 치악산 자락에서 보냈고 얼마 전 두 명의 아이를 마지막 졸업식으로 보냈다. 한 아이는 한 번도 부모와 떨어져 본 적도 없었는데 지금은 혼자서 잠도 자고, 시내버스도 혼자 타고 다닐 수 있게 됐고, 입학 당시 말이 거의 없던, 수줍음의 끝판왕이었던 아이는 어느 새 난타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고 작가가 꿈이 된 수다쟁이 소녀가 돼 있었다.

 두 아이가 참꽃에서 3년을 지내며 조금씩 성장할 때 나와 교사들이 한 것은 고작(?) 기다려 주는 것이 전부였다. 각자가 가진 본래의 DNA는 말할 것도 없고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두 다른 아이들을 같은 잣대로 똑같이 성장하기를 기대하지 않았을 뿐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라는 말들을 자주 듣는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이름'을 불러 줄 때 비로소 '꽃'이 되고, '자세히' 봐 줘서 '예쁘다'는 걸 알게 하고, '꽃'이 '흔들리며 핀다'는 걸 온전한 기다림으로 지켜봐 주면, 단지 때가 다를 뿐 아이들은 각자의 색깔과 각각의 모양으로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아랫집 감자꽃을 보면서 내 텃밭 감자꽃의 더딤을 탓하지 않아야한다는 것을.

신동혁 참꽃교육공동체 대표/참꽃작은학교 대표교사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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