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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학 원주생명농업 대표

기사승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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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에서 왔으니 흙을 지켜야 한다"

 

 흙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 무엇 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땅을 살리는 것이라는 게 박영학(61) 원주생명농업(주) 대표의 철학이다. 그래서 농부가 되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당연한 순리였다. 호저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사는 박 대표가 농사를 시작한 것은 25세. 2남 7녀 다섯째로 장남이었던 박 대표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 어머니를 도와야 하는 책임감도 한몫했다.

 평범한 농부였지만 당시 호저교회 한경호 담임목사를 만나면서 친환경농업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한 목사님이 호저에 있는 교회 연합 체육대회를 열었는데 끝난 뒤 평가회를 하면서 친환경농업과 농촌의 앞날에 대해 말씀하셨다. 하늘 뜻에 맞는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35년 전을 회상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박 대표에게 '하늘의 뜻에 맞게 사는 길'은 자연을 보호하고 땅을 살리는 것이었다.

 첫 도전은 벼농사였다. 6천600㎡ 논에 오리농법을 시작했다. 홍성 풀무학교에 가서 병아리 200마리를 사 와 20여 일 키운 다음 논에 풀어줬다. 설레기도 했고 기대도 컸다. 하지만 며칠 뒤 논에 가보니 오리가 벼를 모두 먹었다. 벼를 다시 심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오리가 모두 죽어있기도 했고 풀 뽑는 데 만 며칠씩 걸렸다. 주변 반응은 모두 "미쳤다"였다.

 농약 한번 치면 될 일을 왜 그리 힘들게 하느냐는 비웃음 섞인 말도 수없이 들었다. 24가마니는 충분히 수확했었던 논에서 유기농으로 바꾼 뒤 5가마밖에 안 나왔다. 포기하지 않았다. 동네에서 같이 시작한 사람들과 의논하고 공부를 했다. 땅이 정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약이었다. 5년이 지난 뒤 12가마니 정도를 수확했다. 5년간 땅 힘을 키우기 위해 매일 풀을 베 퇴비를 만들어 논에 뿌렸다.

 5년이 지나니 조금씩 수확량이 늘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생태계가 살아나기 시작하니 풀도 안 났고 병해충 피해도 줄었다. 벼멸구 확산으로 원주 전역이 병해충 긴급 방제를 하는 등 한바탕 전쟁을 겪었지만 박 대표 논은 아무 이상 없었다.

 겨울에는 친환경농법을 연구 개발하는 정농회를 찾아가 공부를 했고 닥치는 대로 책을 사서 읽었다. 쫓아다니며 강의 듣고, 묻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였으면 지쳤겠지만 같이하는 동료들이 있어 힘들지 않았다. 힘들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두가 똘똘 뭉쳤다"고 말했다.

 이렇게 호저에서 시작된 친환경농업은 1989년 농민 조합원 중심의 호저생협을 탄생시켰다. 이후 생산자만의 생협이 아닌 소비자도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원주생활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단관택지에 132㎡ 규모의 매장을 만들어 소비자와 직접 만나기도 했다. 초대 이사장을 맡은 박 대표는 소비자 모임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같이 만나니 완벽한 체계를 갖췄다. 2004년에는 친환경농산물 공동물류센터를 시작으로 도정공장, 공동선별장을 만들었고 2018년에는 제철신선반찬공장인 '생기를 담아'를 설립했다.

 지난해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하는 이달(3월)의 농촌융합복합산업인으로 선정됐다. 쌀, 복숭아, 채소를 비롯한 16개 품목에 대해 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무항생제 축산물 취급자 인증을 획득하고 162명으로 구성된 지역 농업인 회원들과 계약 재배하고 있다. 여기서 수매한 친환경 농축산물로 소포장 김치와 반찬 제품을 개발한 것이 인정받은 것이다. 

 안전한 식품 생산을 위해 HACCP 인증을 취득하고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우렁이와 쌀겨를 이용해 생산한 친환경 쌀 '우리 농군, 우렁 각시'와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을 받은 '유정란'도 인기다. 80%를 두레생협과 지역 생협에 납품하고 있어 안정적인 수입 구조를 갖췄다. 그뿐만 아니다. 두레귀농학교에서는 농산물 수확, 대보름 행사 등 연간 20회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쉴 틈 없이 달리기만 했던 그가 요즘 또다시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작년에 강원친환경연합사업단을 구성했다. 강원도내 14개 친환경영농조합이 출자해 설립한 농업법인으로 700여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생산과 유통을 단일화해 농가 수익을 올리기 위한 것으로 지난 2월 국내 최대 팝콘 가공업체인 (주)제이앤이와 유기농팝콘 원료생산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연간 50톤 정도를 생산해 납품하기로 했으며, 농가소득 33억원은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 대표는 "강원친환경연합사업단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하는 것과 도내 18개 시·군이 친환경농산물 특화상품을 개발해 품질 경쟁력을 갖추게 돕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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