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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소멸

기사승인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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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계 지인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요즘 문화계에는 관(官)만 있고 민(民)이 없다고 말한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예술가  Y가 원주를 떠날 처지에 놓여있다. 오랜 시간 살며 작업해 오던 창작공간이 매각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그가 살고 있는 동네는 인근지역의 개발과 인구 유입으로 부동산 시세가 크게 올랐고, 마침 건물주는 매각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평생 예술가로 살아온 그에게 크게 오른 건물 매입비 마련은 언감생심이다.

 그동안 그의 창작공간은 주변 예술가들과의 교류는 물론이고 청년예술가들을 위한 플랫폼이자 예술생태계를 이어주는 의미 있는 역할을 해 왔다. 창작에 매진해 온 그의 시간과 기록 그리고 그가 쌓아온 문화예술계의 관계성들은 이제 곧 사라질 일만 남았다.

 한 명의 예술가가 생존을 위해 저항하며 성숙된 창작자로 성장하기까지는 참 고되고 지난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예술가 개인의 노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역 사회와 그를 아끼는 많은 애호가들 역시 그 만큼의 시간과 비용, 노력을 함께 지불했을 것이다. 어느 사회이건 예술가의 존망은 그렇게 중요하며 그가 보여 준 삶의 괘적과 창작과정은 때론 아이들에게 꿈을 만들어 주기도 했고 이웃들에게는 활력이 되었을 것이며 지역에는 변화를 위한 자극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를 보고 자란 많은 아이들이 예술가가 된 것이 이를 증명 할 수 있다.

 늘 권력의 반대편에 있어야 하는 예술가의 숙명은 때때로 그의 언어를 독하게 만들기도 했겠지만 그 만큼의 무게는 그의 창작에 대한 책임감 있는 자세를 만들어 주기도 했을 것이다.

 예술가가 지역을 토대로 생존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중·소도시에서는 예술가의 생존을 뒷받침 할 만한 환경도 정책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연유로 많은 예술가들이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 될 수 밖에 없다. 시장이 형성되어있고 분화된 전문가 집단이 포진되어 있으며 각종 제도와 정책이 손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생태계가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이 지역성을 고집하는 건 그 자체로 높이 살 만한 일이다.

 최근 문화계 지인들을 만나면 한결같은 이야기가 있다. 요즘 문화계에는 '관'만 있고 '민'이 없다는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의 GDP 대비 문화예술 예산은 세계 1위인 프랑스에 아주 근접해 있다. 이런 괄목할 성장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지원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지원기관별로 명확한 합의점이 없다. 여전히 예술가들은 지원의 수혜자라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고 그렇다보니 창작자들의 노동의 가치에 대한 평가 역시 제각각이다.

 그 결과 문화예술지원을 독점하는 공공기관들은 문화예술을 관료의 틀안에 가두게 된다. 예술가들은 관의 하청 노동자로 전락하거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에 집중하는 예술가들은 생존을 위협 받을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지방정부들은 예술가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아주 소액이거나 아니면 예술 생태계 지원, 예술인 복지 등은 중앙정부나 광역자치단체에 미루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창작 작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노동과 생산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시혜적 태도를 갖고 있다.

 수혜의 대상이기 때문에 생존은 개인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선거권을 가진 시민으로서,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시민으로서 그들의 생존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건 아닌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화현장에서는 관만 존재하고 민이 없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지만 관료조직에서는 늘상 민과 소통 한다며 억울해  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 보자.
 지역에서 오랫동안 성장하고 유의미한 씨앗을 뿌렸던 한 중견 예술가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지역을 떠날 위기에 있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 보다는 예술정책의 입장에서 봐주기를 바란다. 문화가 중흥할 때 반대편 그늘 속에서 한 예술가가 소멸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영오 연출가/극단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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