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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상 오복떡본가 대표

기사승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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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추천 백년가게 도내 1호…수십 년 봉사활동 귀감

"나라·국민으로부터 인정받아 감사"

중소벤처기업부는 수십 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소상공인 점포를 백년가게로 지정하고 있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600여 점포가 백년가게로 선정됐는데, 정부는 이들이 100년 이상 지속·성장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올해엔 국민추천제가 도입돼 국민이 직접 심사에 참여하고 있다. 시민이 우수성을 인정한 점포여서 선정되면 점포주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자부심이 남다르다. 

지난달, 도내에서는 원건상(62) 씨가 운영하는 '오복떡본가'가 국민추천 백년가게로 선정됐다. 원 씨는 1994년 떡집을 열어 올해까지 26년간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 개업 당시 4평(13.2㎡) 남짓에 불과했던 점포는 어느새 150평(약 500㎡)까지 확대됐다.

취급하는 떡 또한 3~4개에서 100여 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는 "가게를 찾아주시는 손님들 덕에 이렇게 훌륭한 명성을 얻었다"며 "시민들이 '그 떡집은 괜찮은 곳이야'라고 평가해 주셔서 너무나 고맙다"고 말했다.

30대 초반,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하자 가족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에 공사판을 전전했다. 이전에 하지 않던 일이라 작업 속도는 굼떴고 사고는 잦았다. 치악예술관 건립 공사 때엔 낙상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험한 일을 뒤로하고자 잠시 배송기사로 일했지만 적은 월급에 식구들 건사가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서울과 부산의 지하철 공사장으로 달려가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야만 했다. 원 씨는 "당시엔 어떻게든 가족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라며 "얼마 못 가 폐병에 걸려 이마저도 그만두었다"라고 말했다. 

원주에서 몸을 추스르니 친척이 장사를 제안했다. 중앙시장 떡집이 장사를 그만둔다는데 대신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 3~4평(약 10~13㎡) 되는 조그만 가게였지만 명절날이면 백 명 이상 줄을 서는 집이었다. 그렇게 대출을 받아 가게를 인수하고 떡 만드는 기술에 전념했다.

광주, 대구, 서울 등에서 떡 경연대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찾아가 새로운 떡을 배웠다. 조선시대 마지막 '기미상궁'이었던 고(故) 황혜성 씨와 그 가족으로부터 수개월 간 떡을 익히기도 했다. 하늘도 원 씨의 노력에 감탄했는지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시작한 떡집은 지금 원주 최대의 전통 떡집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주변인의 도움도 지대했다. 그중에는 성불원 주지 스님 현각도 있었다. 현각은 원 씨가 원주불교청년회장을 맡을 때 불자의 도를 가르치던 선생이었다. 제자가 떡집을 차렸다는 소식에 그는 성불원 어린이집이 정기적으로 원 씨의 떡을 구매하도록 지원했다.

원건상 씨는 "처음 떡을 납품했을 땐 신도나 선생님들이 '떡이 맛이 없는데 다른 집으로 바꿔야 한다'는 평을 했다"며 "그런데도 현각스님은 '아니야 이 친구는 내가 도와줘야 해'하며 무조건 우리 집 떡을 사주셨다"고 말했다. 이렇게 현각은 원 씨가 장사 초기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기반을 잡아줬다. 

자신이 큰 은혜를 받아서인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에는 인색함이 없다. 과거 원건상 씨는 밥상공동체종합사회복지관 허기복 목사와 원주역 일대 노숙자들에게 매일 떡을 나눠주곤 했다.

1995년부터 2009년까지 저녁 시간만 되면 이 일을 위해 역 근처를 살피고 다녔다. 불교를 신실하게 믿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스스로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경험해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몇 년 전에는 단구동 사랑나눔짜장 급식소를 찾아 노숙자,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자원봉사를 전개했다. 원 씨는 "허 목사님은 나랑 종교는 달라도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려 어려운 분들을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매년 성탄절이면 밥상공동체 행사를 지원하기 위해 떡을 후원하고 있다. 소쩍새마을, 원주복지원, 명륜복지관, 성불복지원 등에도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수십 년간의 봉사활동으로 작년엔 원주시민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원건상 씨는 "요즘 매일 아침 눈을 떠 거울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며 "'그래. 이렇게 사는 것도 잘사는 길이지. 앞으로도 더 열심히 살자'고 되뇐다"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새벽3시에 가게에 나와 장사 준비를 한다. 지금은 아들 원치준 씨가 돕고 있지만 새벽일을 거르는 날은 없다. 본인이 일한 만큼 비용이 줄고 그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원 씨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알듯이 어려울 때 베풂을 받아본 사람만이 남을 베풀 수 있다"며 "장사로 버는 돈은 잠시 내게 머물다 가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같이 일하는 가게 식구들이 좀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빠듯하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월급을 올려주고 싶다고 했다. 또한, 장사가 잘 돼서 오복떡본가를 찾는 사람들에게 더 맛있는 떡을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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