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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맛 집의 조건

기사승인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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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오갈 수 있는 가게, 주인도 손님도 서로 공생하며 존중받는 가게. 만약 그런 공간이 있다면 그 곳이 바로 차별 없는 가게이지 않을까…

 

 나는 휠체어 사용자다. 그래서 약속을 정하려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있다. '그 동네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있을까요?' 인터넷에 맛집으로 소개된 식당이라도 우선은 문턱과 계단이 없는지부터 살피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얼마전에 지인이 맛집이 있다고 해서 함께 가기로 했다. 인터넷에는 출입구에 문턱이 없었는데 도착해보니 지옥의 계단이 펼쳐져 있었다. 그 집을 소개한 사람은 아마도 그 계단이 계단으로 안 보였을 것이다.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접하는 일종의 구조물쯤으로 여기며 휠체어 탄 사람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우리는 한참이나 경사로가 있는 식당을 찾아 배회하다가 골목 모퉁이 한 곳을 발견해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휠체어장애인에게 메뉴 선택권은 없다. 오직 접근권이 보장이 되어있는지가 있을 뿐이다.

 휠체어장애인에게 경사로가 설치된 가게는 무조건 단골이 되기 마련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습관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고, 그 동네에 자주 갈 일이 없더라도 접근권이 보장되는 가게는 유심히 봐두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기억해두었다가 동료들에게 정보공유를 한다.

 장애인 손님이 있으면 '미관상 안 좋다'거나,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 등으로 거부를 당했던 기억도 있다. 00시장에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가 바쁜 저녁이라 휠체어가 자리를 많이 차지하니 다른 사람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리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장사한다지만, 그들은 특정인만 손님으로 보는 색안경을 쓴 게 분명하다. 받고 싶은 손님과 받기 싫은 손님을 거르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1984년 김순석이라는 소아마비장애인이 서울시장에게 '서울의 턱을 없애주시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돈이 있어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고, 밥 한술 먹을 수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턱 때문에 행인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고, 육교를 오를 수 없어 차도를 가니 무단횡단했다고 경찰에게 잡혀가야 했다.

 1984년의 휠체어 탄 장애인 김순석이 외친 절망을 2021년을 살아가는 장애인도 느끼고 있다. 1984년의 김순석이 식당 문 앞의 턱 때문에 배고픔을 참고, 가게 계단 앞에서 목마름을 참으며 돌아서야 했던 모습이 2021년, 같은 모습 같은 마음으로 반복되고 있다. 세월이 가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장애인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장애인은 열심히 차별에 저항해 투쟁하며 법을 개정해 나가려 한다. 그렇게 법을 바꾸면 법대로 지켜내는 것이 필요하고, 동시에 사회의 인식 변화 역시 필요하다. 누구나 편하게 접근하도록 만들려는 건설업자의 인식, 장애인도 소비자로 존중하는 가게 주인들의 인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누가 먼저 이런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일까. 사회 변화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해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 바로 이 순간부터 나부터 시작할 때 가능해진다. 이는 누구나 알고는 있다. 그런데 왜 안 되는 것일까.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7조에 따르면 장애인의 결정권과 선택권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으나, 일상에서는 이것이 요원하기만 하다. 이와 같은 권리를 모두가 보장하기 위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전동휠체어는 나의 몸이기에 분리될 수 없다. 휠체어와 한 몸인 채로 어느 가게든 약속을 잡고, 먹고 싶은 메뉴를 마음대로 고르고,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 볼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상을 나는 바란다.

 현재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현실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다. 아직도 수많은 가게에서 높은 문턱과 계단을 마주하며 그저 출입만 할 수 있음에 안도해야만 한다. 많은 가게 주인들은 전동휠체어가 들어오면 두 개 팔 것을 하나밖에 못 판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면 인간을 협소하게 바라보면 안 될 것이다. 인간을 협소하게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오갈 수 있는 가게, 주인도 손님도 서로 공생하며 존중받는 가게. 만약 그런  공간이 있다면 그 곳이 바로 차별 없는 가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용섭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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