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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도시

기사승인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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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는 천년도시입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의 가치를 알고, 시간을 보존하고 기억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도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그 곳입니다. 요즘 뉴스메이커인 월성원전이 있는 그 곳이기도 합니다. 배우 박해일이 주인공을 했던 장률 감독의 영화 '경주'가 맞습니다. 세계사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1000년 왕국의 수도입니다.

 도심 한 가운데 왕릉들이 즐비하고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1천년 전에 만들어진 왕릉과 지금도 함께 살고 있는 도시입니다.
특별한 볼거리를 찾아 방문하는 문화재가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 맞대고 살고 있는 역사들입니다.

 경주에 가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도심을 산책하는 것입니다. 재래시장들은 여전히 번화하고 10분 거리의 왕릉에서는 주변을 산책하는 주민과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경주는 오래 된 도시이지만 멋진 관광지는 아닙니다. 그저 오래 된 역사가 일상이 된 채 살아가는 도시입니다. 오래 된 집, 길, 무덤, 상점이 잘 정돈 되지도 않은 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막에서 포진리 가는 약 3㎞의 도로에 있던 100여 그루의 은행나무, 잣나무, 소나무들이 모두 베어졌습니다. 도로를 확장하면서 모두 베어버린 것입니다.

 제가 문막에 산 지 20년이 넘었으니 그 보다 훨씬 오래 된 나무들입니다. 가을이면 도로를 아름답게 물들이던 은행나무들과 섬강변 자전거도로에 시원한 바람을 불게 해주는 잣나무, 소나무들입니다.

 물론 나무를 옮겨 심는 것 보다는 새로 심는 게 경제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은 누가 값을 매겨 줄까요. 그 나무들에 기억된 지난 수십 년의 역사는 누구에게 값을 지불해야 될까요.

 시민의 힘으로 되살려 보고자 했던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사업에서 탈락하면서 또 다시 존치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사라지게 되겠지요.

 비용대비 가성비가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가치로만 따지는 가성비에는 시간의 값이 책정되지 않습니다. 이 도시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겁니다. 최근에는 원주역도 문을 닫고 멋진 역사를 지어 이전 하였습니다.

 원주는 천년도시입니다. 원주라는 지명을 사용한 것만으로도 천년이고 지역이 생겨난 건 어림잡아도 천오백년은 됩니다. 도시는 과거와 현재가 양립해야 하고 낡은 것과 새것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노인과 청년이 함께 일하는 도시여야 합니다. 

 경주를 한국의 교토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을 본적이 있습니다. 천만에요. 경주는 교토만큼 고급스럽지도 잘 정돈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오랫동안 기억된 곳이 주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 보기 좋은 것, 화려한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낡은 것, 오래 된 것, 화려하지 않은 것 들은 점점 눈에 띄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복제된 뉴트로에 열광하지만 그것에는 시간이 기억되어 있지 않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의 가치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괴물은 재화가 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폐기처분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시간을 보존하고 기억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도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교토에 가면 '철학의 길'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100여 년 전 어느 철학자가 늘 산책하던 2㎞ 정도의 길입니다. 그 이후 시인 윤동주가 자주 산책했고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산책하던 곳입니다.

 지금도 100년 전 모습 그대로 주민들이 편안히 산책하는 아주 작은 길입니다.
100년 전의 사람과 지금의 사람이 같은 길을 걷습니다. 도시의 옛 모습과 새 모습이 공존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원영오 연출가/극단 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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