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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한 대한민국 후손에게 물려줘야

기사승인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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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2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일을 제정하였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 모인 수천의 성난 우리 백성들은 평화적으로 3.1만세운동을 벌였으나 극악무도한 일제의 탄압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내놓고 저항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3.1만세운동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 되었다.

 원주. 횡성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노림리에서는 3월 27일 노림의숙 제1회 졸업생 7명이 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청년들이 군수에게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게 한 곳으로 유명하다. 4월 5일에는 소초면민 300명이 만세 시위를 전개했고 4월 7일, 8일에는 귀래리에서 주민 200여 명이 만세 시위에 나섰다. 흥업리에는 4월 9일 낮과 밤 두 차례에 걸쳐 만세시위가 펼쳐졌고 주민 대부분은 일제 관헌에 검거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다. 4월 11일 손곡리에서는 주민 수십여 명이 총 9회에 걸쳐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1919년 3월 1일 전국으로 번지기 시작한 만세운동은 3월 27일 횡성으로 이어졌다. 4월 1일 횡성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도내에서 가장 격렬했으며 연인원 5천여 명이 참여했으며, 강원도 전체로 퍼져나가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렇듯 우리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만세운동은 전국에서 횃불처럼 일어난 만세운동의 원동력이 되었고, 이는 우리지역의 자랑이고 자긍심이다.

 이렇게 일제강점기에 저항하던 우리 조상들은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을 것을 논의하게 되었고, 각지에서 3.1운동의 확산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주인은 우리라는 주권민족의 주체성을 알리는 독립운동을 통하여 국내외에 7개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1919년 4월 13일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같은 해인 1919년 9월 11일 각지에서 회동하던 임시정부들이 상해임시정부를 구심점으로 통합되면서 정식으로 임시정부가 탄생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기념일 제정  논의는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돼 1980년대까지 이어지다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수립했던 임시정부 수립일이 1919년 4월 11일로 밝혀져 국가 보훈처에서는 2018년 제99회 기념식까지는 매년 4월 13일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로 역사적 의의를 기리는 행사를 진행해 왔으나 100주년이 되는 2019년부터는 4월 11일로 기념일을 변경하기로 확정 고시했다.

 올해는 임시정부가 수립 된지 102주년이다. 우리는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

 우리 모두가 겪어보지 못했던 코로나 19로 지난 일 년은 십년의 세월보다 긴 힘들고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의 말과 글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했던 36년의 그 긴 고통의 일제강점기 시대를 오로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투쟁했고 끝내 독립을 이루어낸 우리 선조님들처럼 우리도 이 어렵고 힘든 시기를 딛고 일어서 부강한 대한민국, 모두가 잘사는 대한민국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번 102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도 더 가슴 벅차게 선조님들의 굳은 의지를 되새기게 된다.

탁연한 광복회 원주연합지회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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