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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내려 관광열차 탄다

기사승인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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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국열차'가 떠오른 건 폐선된 중앙선에 관광열차가 생긴다는 소식을 접해서였다…관광열차로 살아나더라도 모두에게 행복한 열차가 되길 바란다. 열차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2013년 영화 '설국열차'가 있다. 1984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만화를 원작으로,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 작품이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지구 온난화 문제와 심각한 기상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기후 조절 물질의 일종인 CW-7을 살포하지만, 이 물질의 부작용으로 인해 제2의 빙하기가 닥쳐오고, 꽁꽁 얼어붙은 지구의 환경 속에서 도저히 인간이 생존할 수 없게 되어, 세계는 차갑고 어두운 암흑으로 변화하게 된다.

 기상 이변에 의한 빙하기에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쉴 새 없이 질주하는 설국열차가 전부다. 열차에선,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바글대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의 꼬리 칸, 그리고 선택된 사람들이 술과 마약 등 환락을 즐기며 호화로운 객실을 뒹굴고 있는 앞쪽 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꼬리 칸 사람들은 자신들을 가축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생활에 불만을 품고 젊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대반란을 시도했다.

 소동 끝에 열차의 보안설계자였던 한 남자를 만난 꼬리 칸 사람들은 그에게 문을 하나씩 열어줄 때마다 크로놀(단백질덩어리 식량)을 하나씩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의 도움으로 점점 앞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한다.

 설국열차는 그 자체로 현실 세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열차의 맨 앞칸에서부터 마지막 칸까지, 계급으로 구분된 인간들이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 속에 생존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런 환경을 거부하는 사람은 열차 밖 미지의 빙하기로 탈출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열차는 같은 선로를 1년 주기로 반복해서 운행하게 되는데, 열차를 탈출했다가 얼어 죽은 사람들의 고난의 주검들은 창밖을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에게 질서를 어지럽힌 자들의 형벌이라고  교육되어 진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설국열차의 존재를 강력히 지지하며 이 열차의 지도자는 점점 우상이 되어 간다. 

 자본, 권력 독점으로 형성된 계급은 객차 칸마다 엄격히 구분되어 있어 각각의 신분 이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설국열차의 내부에는 보안을 위한 군인과 열차의 운행을 위한 요원, 상류계급 사람들에게 신선한 샐러드를 제공하기 위한 농부 등 역할과 기능에 따라 구분된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모두 자신의 공간(객차) 외에는 전혀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약60%를 사망케 한 페스트는 당시의 사회 문제를 적나라하게 노출 시킨 계기가 되었으며 봉건제도가 무너지는 단초가 되었다.

 온 도시가 죽음으로 뒤덮인 세계를 통해 사람들은 부의 불균형, 권력의 적나라한 이면, 종교지도자들의 비도덕적인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급격하게 인구가 줄면서 노동인구를 확보하지 못한 영주들은 값비싸게라도 노동력을 사야 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상승과 더불어 소 자본가들의 등장이 봉건제도가 무너지는 가속페달 역할을 하게 된다,

 팬데믹 시대인 지금 우리는 페스트 시대 유럽처럼 제도의 붕괴와 충돌, 변환의 시대에 와있다. 1984년에 처음 출간된 설국열차를 지금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가 그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다른 건 빙하기가 오기 전에 팬데믹이 먼저 왔다는 것이다. 팬데믹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세기의 묵시록 속에 어떤 소중한 글귀가 숨어 있는지 찾아봐야 할 것이다.

 설국열차가 떠오른 건, 폐선된 중앙선 일부 구간에 관광열차가 생기고 숲길이 조성된다는 소식을 접해서이다.

 그 옛날 강릉으로 가는 중앙선 밤 기차는 방황하는 가난한 청춘 모두에게, KTX가 넘볼 수 없는 평등한 추억이었다. 비록 관광열차로 살아나더라도 모두에게 행복한 열차가 되기를 바란다. 열차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첨언
 영화 설국열차는 당대의 사회 문제를 통렬하게 비판했지만, 당시 한국 영화사상 최고 제작비인 450억이 투입됐고, 대기업의 독점적인 배급으로 국내 상영관 스크린을 모두 잠식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원영오 연출가/ 극단 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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