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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론: 원주문화를 말하다

기사승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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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문화운동을 위한 시론

 원주는 민주화운동도시이며 협동운동의 중요한 거점이자 생명운동의 발상지로 평가받는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과 박경리 소설가, 김지하 시인, 이철수 화백, 김민기 음악인 등이 원주에서 살면서 만나고 인연을 맺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화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상과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원주의 80년대는 81년 원주민속문화연구회 창립과 활동으로부터 시작한다. 수많은 콘텐츠와 이야기 등이 있지만 실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늘 몇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다. 이후 군사정권이 계엄령과 대학교 봉쇄령을 내렸다. 그해 가을, 원주에서 타 지역으로 진학하거나 원주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던 대학생들이 원주 가톨릭센터에 모여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우리 사회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임에서 문화운동을 전개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1981년 1월 21일 가톨릭센터에서 봉산탈춤 강습회를 개최하였다.  강습회는 1987년까지 매년 2차례 이상 총 15차례 열렸다. 이 강습회를 거쳐간 시민과 학생들만 해도 500명이 넘는다. 이들은 1987년 6월항쟁의 주역들이 되었다. 80년대 원주 민주화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그들은 탈춤만 춘 것이 아니었다. 원주의 민속자원을 발굴하기도 하였다. '매지리 풍물'을 찾아내어 전수받고 지역의 각 대학에 보급하였다. 〈간디〉 등의 영화 상영회도 열었다. 우리문화깅습회라는 이름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실시하였다. 원주지역 각 대학에 탈춤연구회, 노래팀, 풍풀 동아리 등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들은 이후 대학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핵심이 되었다. 창작 마당극 〈밥〉 등을 제작하여 횡성, 안동 등 전국 순회공연도 다녔다. 농민들의 추수감사제 행사 때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참여하였다.  

 전국의 문화운동 단체들과 연대해 '지역문화운동협의회'를 결성했다. 문화운동 전략과 노선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회의가 봉산동에 있는 가톨릭교육관에서 개최됐다. 이 모임은 1988년 민중문화운동연합과 합쳐 '한국민족문화예술인총연합'(민예총)이 되었다. 민예총 전국 연수회, 전국 통일대동장승굿 행사, 전국 민족극한마당 행사도 개최했다. 원주는 이제 전국 민중문화운동의 중요한 전략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문화예술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김지하 시인의 도움으로 목요문학강좌가 가톨릭센터에서 열렸다. 소설가 김성동, 평론가 구중서, 시인 신경림 등 많은 문인들이 다녀갔다.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토요시 동인』이 결성되었다. 

 그들은 〈원주에 사는 사람들〉이란 동인 시집을 발간하였다. 문화기획실 모두골은 북원출판인쇄사를 설립하여 김기봉 시인의 〈봉천내〉라는 시집과 〈천하태평〉이란 책을 발간하였다. 지역 출판사가 발간한 최초의 시집이라는 의미가 있다. 90년대엔 지역사회에서 《평론원주》이라는 무크지도 발간하여 지역사회 문제를 공론화하는 출판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젊은문화집단 『모듬』이란 문화단체도 만들어졌다. 내부에 「동토」라는 극단도 결성하였다. 카페 《공간》이라는 곳에서 이강백 작 '결혼'이란 작품을 공연하였다. 감리회 청년관 건물에 임시 공연장을 만들어 황석영 작 '장사의 꿈'을 일주일간 장기공연을 하였다. 원주에서의 최초의 장기공연이자 최초로 출연진들에게 소정의 출연비를 지급하였다. 

 가톨릭센터 뒤 맥주집 몽마르뜨에서 소리굿 '엔까 바람이 불어온다'라는 창작 음악극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김시라 선생의 '품바' 공연,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이 출연하였던 연극 '아리랑' 등 수많은 공연 작품들을 기획, 초청하였다. 그들의 활동은 이후 통일문화연구회, 놀이패 골굿떼, 문화기획실 모두골 등으로 이어졌다. 놀이패 모두골은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극단 노뜰, 매지굿연구회 등도 원주민속문화연구회와 직간접적으로 인연들이 있다. 

 1991년에 원주밝음신협이 건물을 신축하면서 『밝음마당』이라는 문화공간을 개장하였다. 수많은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인과 단체들이 활동하였다. 극단 노뜰의 창립 공연,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서화 전시회도 이곳에서 열렸다. 원주민속문화연구회 활동은 생활문화로 시작하여 전업 예술가들을 배출하는 창구가 되었으며 대학 문화패 창립과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구심 역할을 하였다. 

 문화운동의 초창기 주역이었던 화가 김봉준, 풍물연구자이며 풍물꾼인 김원호, 소설가 이인휘 등이 원주로 들어와 살고 있다. 한국 문화운동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자산이자 자원이신 분들이다. 여전히 현역 창작자로서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원주시민들은 잘 모를 수 있는 일이라 여기에라도 기록해두고 기억하고자 한다. 원주는 한국의 민주화운동, 협동운동, 생명운동 뿐만 아니라 문화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지역이다.

김기봉 지역문화네트워크 공동대표,행정학 박사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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