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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관찰사 방에서…마당극 '선화당 원씨'

기사승인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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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캄한 관찰사 방에서 벌어지는 마당극이라는 공간적 아이러니 또한 '선화당' 공연만의 유일무이한 컨셉…500년 감영 조왕신의 에너지가 우리를 돌보리라

 판각 서체의 '관찰사의 사건일지/사건 1 선화당 원씨'가 먹빛과 핏빛으로 떠있는 네 폭 장지문에 한복 차림 낭자와 나뭇가지 실루엣의 키치 감성 포스터! 아카데미극장보존추진위원회 단체 채팅방에서 강원감영 상설프로그램 안내 공지가 뜨자마자 예약 문자를 보냈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 그림책도시가 열 번째 원주역사그림책 <강원감영>을 진행 중이고 틈틈이 관련 자료를 모으거나 현장 답사를 거듭하던 참이라, 보물로 지정된 선화당 내부를 체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반가웠습니다. 

 당일 경기도 광주에서 달려온 그림책 작가 가족은 초등 3학년 어린이가 포함된 3인, 편집자와 기획자 등 5명이었는데 감영 마당으로 들어갔다가 놀랐습니다. 하나둘 모여드는 관람객이 많아서 놀랐고, 겨우 8시에 옛 건물 내부가 회랑을 걷기도 조심스러울 만큼 캄캄해서 새삼 놀랐고, 관찰사 집무실로 쓰기에는 넉넉하지만 공연장으로서는 턱없이 좁은 공간이 객석과 무대 모두를 천연덕스럽게 감당하는 데에도 무척 놀랐습니다. 

 '경계 없는 객석과 무대의 열린 공간'이 최근 공연계의 트랜드이지만, 그 열린 공간은 어둠과 더위로 꽉 찬 채 사방이 닫힌 밀폐감을 준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 할 만했습니다. '작은 공간에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무서운 옛이야기를 듣던 경험을 재현한다'는 기획 목표는 그처럼 착실히 구현된 셈이어서 고수며 배우며 스탭과 관객들 모두 적잖이 비지땀을 흘렸지요.

 한여름이나 다름없는 유월 중순의 무더운 밤, 21세기의 문명을 뒤로 하고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조선시대 아니 선화당에서 수년 만에 최대치의 인구 밀도와 더위를 제대로 경험했달까요. 막이 오르길 기다리며 그 시절 여름밤에는 열대야가 없었겠지, 라는 생각…관찰사가 야근을  한다면 누군가 부채질 시중을 들었을까, 라는 엉뚱한 궁금증…조선시대 건물치고 천정이 꽤 높다 싶은 느낌은 조선 후기 남부 여섯 개 지방 감영에 딸린 선화당 중에 가장 큰 규모이기 때문일까, 라는 의문이 이어지는 사이 고수의 장구 소리에 이끌려 공연에 합류했습니다.

 500년을 감영 부엌에 깃들어 살다가 복원 사업으로 제 자리를 잃는 바람에 이야기꾼으로 변신한 조왕신! 한 많은 원씨 낭자 귀신 이야기를 감칠 맛나게 끌어가는 내레이터 및 1인 다역을 열연한 김주회 배우에게 매료된 이가 저뿐이었을까요. 연출자 백송희 선생께 물으니 노동연극 극단 현장 출신으로, 교육극단 해마루 단원으로 활동했던 마당극 전문 배우라고요. 그 저녁 선화당 관객들은 카네기홀도 마당놀이판으로 바꿀만하다 싶은 김주회 배우의 연기와 에너지에 제대로 휘둘렸습니다. 

 그 탓에 이야기 속의 이야기-막대 인형으로 연출한 그림자극이 제게는 부록처럼 여겨졌고 그나마 매끄럽지 않은 지점 몇 군데에서는 공연 전체의 완성도를 염려하게 되는 조바심이 끓었으나…애타는 연정과 권력에 눈먼 욕망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절망의 서사와는 별도로…어린이 관객 모두가 전격 몰입할 만한 장면이었지요. 막을 내렸을 때에는 물론 마무리 레크레이션에도 관객 모두가 한마음으로 갈채를 보냈습니다. 

 초연 관람을 특별히 탐하는 이라면 아시겠지만 공연 첫 회는 배우며 연출이며 스텝, 심지어 무대 공간까지도 최대치의 에너지를 뿜어내기 마련입니다. 그와 함께 미처 다듬어지지 않은  흐름의 모서리와 옹이가 울퉁불퉁 손에 잡히기 일쑤고요. 그래서 관람 후기가 다소 안타까울수록 N차 관람 티켓을 예매하는 열정파 관객이 늘어나는 법, 이제 세 차례 남은 공연 중 최소 한 차례는 더 관람하게 될 듯합니다.

 캄캄한 관찰사 방에서 벌어지는 마당극이라는 공간적 아이러니 또한 '선화당' 공연만의 유일무이한 컨셉이니까요. 다시금 감염병이 확산되는 걱정스런 상황이지만, 500년 감영 조왕신의 에너지가 우리를 돌보리라 믿습니다. 

이상희 그림책시인,원주시그림책센터 일상예술센터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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